수년전 정치성이 배어있는 사실주의 연극을 한 편 본 적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딱 내 취향의 그런 공연이었는데 왠지 큰 감흥이 와 닿지 않았다.
그때 잠시 당황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시대가 나아져서 그런 건가?
물론 독재가 끝나고 소정의 민주주의를 얻긴 했으나 이게 전부인 건 아닌데...
예전의 그 억압 가득하던 시절이 아니라고 해서 이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건가
아니면 상업성을 어쩔 수 없이 쫓는 일을 하다 보니 나 자신까지 이렇게 변해 버린 건가
씁쓸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기도 했던 것 같다...
연극 '마라, 사드'를 보면서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묵직한 무게의 박수소리를 들으면서
이러한 정치적 연극이 커다란 공감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그런 비극적인 시대가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음을 통탄하며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도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관객의 이성에 호소하는 서사극과 감성을 깨우려하는 잔혹극
이 두 연극기법 및 이념이 공존하면서 묘한 상충 상승 효과가 드러난다.
또한 극중극 형태를 띠면서 3개층의 시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
마라가 살해된 경위를 보여주는 1793년의 극중극,
프랑스혁명 4년후이자 사드의 연출로 그 극중극이 공연되는 1808년,
그리고 이 희곡이 무대화된 공연을 보고 있는 현재...
해설자는 다 지나간 얘기일 뿐 요즘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지만
2009년 6월 며칠 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하는 마지막 멘트는
이 200여년 전의 일이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 매우 유효한 질문임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음악과 노래의 적극적 개입으로 총체 음악극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대사와 노래에 따라 마이크 사용이 On/Off되면서
청각적 집중력을 약간 흐트러뜨린 점을 제외하면
뮤지컬적으로 쓰인 게 아닌, 서사극적으로 쓰인 창작 음악/노래가
극 전체의 효과 차원에서는 소정의 몫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혁명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라',
인간의 내면이 해방되지 않는 한 어떤 혁명도 무의미하며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만드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주장하는 '사드'...
이 작품은 연출방향에 따라 방점이 다르게 찍혀질 수 있다.
마라 위주의 해석이 가해진다면 혁명에 대한 공연이 될 것이고
사드 위주의 해석이 가해진다면 인간 본성의 광기와 악에 대한
보다 보편성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 이 작품은 사드 우위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마라는 배우일 뿐인 정신병자이지만, 사드는 극중극의 작가이자 연출가이다.
게다가 마라는 욕조 속에 한정되어 있어 신체적 움직임의 자유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한국의 '마라, 사드'는
연출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마라'가 훨씬 돋보이며 그의 말에 힘이 실려진다.
이는 어찌 보면
천박하기 그지없는 지금의 이 나라를 살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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