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brief comment

Marat, Sade

spring_river 2009. 6. 15. 19:33




수년전 정치성이 배어있는 사실주의 연극을 한 편 본 적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딱 내 취향의 그런 공연이었는데 왠지 큰 감흥이 와 닿지 않았다
.
그때 잠시 당황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
시대가 나아져서 그런 건가
?
물론 독재가 끝나고 소정의 민주주의를 얻긴 했으나 이게 전부인 건 아닌데
...
예전의 그 억압 가득하던 시절이 아니라고 해서 이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건가

아니면 상업성을 어쩔 수 없이 쫓는 일을 하다 보니 나 자신까지 이렇게 변해 버린 건가

씁쓸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기도 했던 것 같다
...

연극 '마라, 사드'를 보면서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묵직한 무게의 박수소리를 들으면서
이러한 정치적 연극이 커다란 공감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그런 비극적인 시대가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음을 통탄하며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도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
관객의 이성에 호소하는 서사극과 감성을 깨우려하는 잔혹극

이 두 연극기법 및 이념이 공존하면서 묘한 상충 상승 효과가 드러난다.
또한 극중극 형태를 띠면서 3개층의 시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
.
마라가 살해된 경위를 보여주는 1793년의 극중극
,
프랑스혁명 4년후이자 사드의 연출로 그 극중극이 공연되는 1808
,
그리고 이 희곡이 무대화된 공연을 보고 있는 현재
...
해설자는 다 지나간 얘기일 뿐 요즘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지만

2009
6월 며칠 여러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하는 마지막 멘트는
200여년 전의 일이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 매우 유효한 질문임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음악과 노래의 적극적 개입으로 총체 음악극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대사와 노래에 따라 마이크 사용이 On/Off되면서
청각적 집중력을 약간 흐트러뜨린 점을 제외하면

뮤지컬적으로 쓰인 게 아닌, 서사극적으로 쓰인 창작 음악/노래가
극 전체의 효과 차원에서는 소정의 몫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

혁명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라
',
인간의 내면이 해방되지 않는 한 어떤 혁명도 무의미하며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만드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주장하는 '사드
'...
이 작품은 연출방향에 따라 방점이 다르게 찍혀질 수 있다
.
마라 위주의 해석이 가해진다면 혁명에 대한 공연이 될 것이고

사드 위주의 해석이 가해진다면 인간 본성의 광기와 악에 대한
보다 보편성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에 이 작품은 사드 우위의 작품이다
.
이 작품에서 마라는 배우일 뿐인 정신병자이지만, 사드는 극중극의 작가이자 연출가이다
.
게다가 마라는 욕조 속에 한정되어 있어 신체적 움직임의 자유도 별로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한국의 '마라, 사드'

연출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마라'가 훨씬 돋보이며 그의 말에 힘이 실려진다.
이는 어찌 보면

천박하기 그지없는 지금의 이 나라를 살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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