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monologue

헤어샵에서의 단상...

spring_river 2005. 3. 22. 16:34

지난 토요일, 머리를 잘랐다.
여느 때와 같이 10년 단골 헤어샵에 갔는데

10
년간 내 머리를 맡아 주었던 디자이너가
장기 해외 연수를 가서 없다고 했다
.
갑작스런 난처함
...

나는 나의 생활에서는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다
.
새로운 것을 탐닉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런 것들에 대해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리 내키지 않아 한다.
손에 익은 옛 것이 편하고 늘 다니던 곳이 편하고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소수의 지인들이 좋다.
글쎄... 특별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강박관념화되어 버린 오랜 업무적 부담을
사적으로는 거부하고픈 욕망에서 비롯된 건지

그리 외향적이지 않고 낯을 약간 가리는
단순한 개인적 성향 때문인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게으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렇다
.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애정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

Anyway,
그냥 여기에서 할 건지 다른 곳을 찾을 건지

짧은 순간 머리를 굴리며 주저하고 있는 나에게
헤어샵 데스크의 직원이 말한다.
"
다른 분 소개시켜 드릴게요
.
 
전에 하셨던 분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베테랑이세요
..."
사실 여기 말고 다른 곳을 찾으려면

또 열심히 정보 검색을 해야 하는 것도 귀찮은 게 사실이라
,
그리고 더 경력 많은 베테랑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그러겠노라고 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번엔 남자 디자이너다...)에게
머리를, 그러니까 헤어를 맡겼다.
결과
?
... 나도 맘에 들었고,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하는 걸로 보아

새로운 선택이 성공적이긴 한 것 같다.

머리를 하며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서

경력이 많다고 솔깃한 내 자신을 생각하며
문득 예전에 우리 팀 직원 하나가 한 얘기가 떠올랐다.
내게 물었었다
,
만약 내가 신입사원 면접관이라면

그 사람의 출신학교를 보게 될 것 같냐는
...
생각되는 대로 그냥 솔직히 대답했다
.
신입사원이라면 물론 그 방면의 특별 활동 결과 같은 게

(
대학 때 무슨무슨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든지
 
관련있는 이러저러한 특기 그리고 그 증빙이 있다든지...)
큰 고려요인이 되고 많이 참작되긴 하겠지만

그런 경쟁요인이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들에서 고른다면
그냥 어쩔 수 없이 출신학교 출신학과를 보게 될 것 같다고.
사실 그런 학력이 그 사람을 증빙해 주는 건 결코 아니지만

별다른 고려요인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그걸 보게 될 것 같다고.
그렇지 않고서도 다른 판단 근거가 없으니까
...
사실 난 학연 지연 따지는 거 딱 질색이다
.
외부 사람들과 얘기하면서도 되도록이면 출신학교 안 밝히고

그리고 지금 우리 팀의 여러 직원들 역시
그들이 어디 나왔는지 난 모른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별로 알려고도 안 했으니까
.
하지만 학력을 둘러싼 이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환경은 나도 안다
.
나 역시 학력 프리미엄을 받은 사람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
.
첫 직장... 그들이 사실 처음에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뽑았겠는가
.
소위 학벌이 첫 번째 사회 관문이라면

경력은 그 다음에 맞닥뜨려지게 되는 두 번째 관문이다
.
그래도 경력이라는 것은 학벌보다는 덜 억울하다
.
자신이 한 만큼 쌓이는 것이므로
...
물론 첫 직장이나 두 번째 직장의 Credit

학벌(또는 기타 Background)에 따라 그 우위가 갈릴 수 있으니 
완전히 독립적인 요인은 아니다
.
그래도 사회에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그나마 정직한 자산은 경력이다
.
좀전의 행동만 봐도

경력많다는 얘기에 솔깃해서
나같이 의심많은 사람이 넘어간다.

무슨 소리지
...
머리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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