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 가지 영화가 3중으로 맞물려 있다.
영화 속의 영화, 영화 속의 현실, 영화 밖의 현실.
그런데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오묘히 넘나듦이 매우 탁월하다.
# 영화에 직접 등장하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반체제활동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2010년 이후
출국 금지, 영화제작 금지, 투옥을 겪으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나가며
국제영화제에서 각광받고 있는 이란의 영화감독이다.
출국 금지를 당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국경 마을에 머물며 국경 너머 튀르키예의 영화 촬영 현장을
열악한 인터넷 환경 하에 원격 지휘하는데,
영화 관람 후 찾아본 정보에 따르면
그 영화 속 영화의 여배우 프로필 또한 의미심장했다.
카메라 앞에서 히잡을 벗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사회 규범 속에서
출연 영화의 노출 씬 때문에 입국 금지가 되어
10년째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이란의 여배우였다.
그러니까
이란에서 나갈 수 없는 감독과
이란으로 들어올 수 없는 배우가 함께 하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에 담겨 있는 것이다.
# 파나히 감독의 영화는 계속 난항을 겪는다.
동네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강가의 두 바위에 앉아
서로의 발을 씻겨주는 그 마을 약혼식 풍습을 찍어 오라고
세든 집주인 청년한테 카메라를 빌려줬더니
Play와 Stop 버튼을 반대로 누른 바람에
강가로 걸어가면서 동네 사람들이랑
감독을 뒤에서 험담하는 얘기만 촬영되어 있다.
중동에서 유럽으로 망명을 시도하는 부부에 관한 영화를 찍던 중에는
남편의 위장 여권을 알아차린 여배우가
현실을 담겠다더니 이건 거짓 아니냐고 감독을 향해 항의를 하고
결국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비극에 이른다.
가부장적 인습과 미신이 만연한 그 시골 마을은
딸이 태어나면 미래의 남편 이름으로 탯줄을 끊는 전통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짝이 정해지게 되는데,
이를 벗어나 도피하려는 한 커플이 함께 있는 모습이
감독의 사진 카메라에 찍혔을 거라는 의혹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감독을 끈질기게 괴롭힌다.
메모리카드까지 건네 보지만 믿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마지막 관문인 '진실의 방'에서 맹세를 하라고 시키고
(정확히는, 있든 없든 마을의 평화를 위해 없다고 맹세하라고 시키고)
감독은 코란 대신 자신의 종교와도 같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맹세를 하고 또 이를 촬영한다.
그러나 그 카메라는 진실의 증거가 끝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점점 죄어오는 당국의 감시망에
떠나줬으면 하는 압박을 받는 감독.
그가 떠나는 길,
마을은 소란스러워지고
얼마 전 약혼식이 열린 그 강가에 또다른 비극이 펼쳐져 있다.
그의 영화찍기는 이처럼 무기력함을 한껏 드러낸다.
# "세상에 두려움이 있으면
권력을 휘두르기 쉬워요."
'No Bears'는 이란 사회를 상징한다.
정부 그리고 사회는
'곰'과 같은 존재들을 허구로 내세워
두려움을 조장하고 통제하며,
사람들은 그 '곰'을 믿는다.
아니, '곰'이 겁 주려고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 질서를 위해 그냥 눈감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실체 없는 공포는 아니다.
'곰'은 있다.
체제의 폭력, 전통을 가장한 인습 등이 바로 '곰'의 정체다.
그 곰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다.
감독은 이렇게 이란 사회의 경직성과 폭압을 드러낸다.
# "곰이 있다!" 외쳐도
곰 같은 건 없다는 걸 요즘 사람들은 거의 다 안다.
그러나 이제는 '곰이 있어야 한다'는 희망이 믿음으로 변질돼
같은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곰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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