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그루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데
전통문화에 관련된 책이었다.
전통혼례에 대한 섹션을 읽어주다가
'기러기'에 관한 부분이 있었는데......
나 : 그루야, 기러기 모양의 목각인형 같은 게 있는데
옛날엔 그걸 상 위에 놓고 신랑신부가 절을 했대.
그루 : 왜 기러기야?
나 : (책에 쓰여있는 대로 설명해 주며)
응, 기러기는 짝을 잃으면 평생 혼자 살아간대.
그루 : 왜???
나 : (갑자기 말문이 막히며... 한참 있다가)
몰라, 기러기는 그렇대네~
그루 : (굴하지 않고 다시) 왜???
나 : 그럼, 그루야~ 남자 기러기랑 여자 기러기가 서로 좋아해서 같이 살았는데
남자 기러기가 갑자기 죽었어.
근데 여자 기러기가 또 다른 남자 기러기를 만나가지고 같이 살아야 해?
그루 : (당연한 듯이) 응!
나 : 다른 남자 기러기 안 만나고 왜 혼자 있으면 안 돼?
그루 : (초롱초롱 나를 바라보며) 심심해!!
나 : (약 30초간 큰소리로 정말 신나게 웃다!)
그래, 네 말이 정답이다!!!
(그러다 그루 볼을 쓰다듬으며) 그루야, 근데 그래도 서로 좋아했는데
그렇게 다른 기러기 만나는 걸 알게 되면, 그 먼저 죽은 기러기가
서운하고 슬프지 않을까?
그루 : (3초간 생각하더니) 그럼, 뭐, 따라 죽으면 되지!
사랑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해 죽을 때까지 충절을 지킨다는 게
마치 세상의 당연한 이치인 양 생각되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 이치는 바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하고 삶에 찌들고 또 복잡다난한 생각들을 하면서
리버럴하게 그 사고가 바꾸어지게 되는 걸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루의 "왜?"라는 말에 공격을 당하며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 이치는 여덟살짜리 시각으로 보아도 말이 안 되는 이상한 논리였던 것이다.
세상의 당연한 이치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고자 하는 질서에 대한 암묵적인 그리고 은밀한 강요의 결과였던 것이다.
그루의 단순한 대답 "심심해!"는
거창하게 더 나아가자면 일종의 자기 행복추구권이다.
이기적일 수 있고 배신일 수도 있지만
그건 살아남은 자의 당연한 권리일 수 있다.
(물론, 권리이기 때문에 선택 여부는 그 사람의 몫이다...)
이처럼 어린애도 알 수 있는 그 당연한 권리를
그 오랜 세월동안 우리나라는 어떻게 억누를 수 있었을까...
이 세상에는 없는 상대에 대한 의무, 그리고 남아있는 자식들에 대한 의무......
그러구보니, 기러기 아빠라는 용어도
다름아닌, 가족에 대한 그 희생이라는 의미로 '기러기'란 말이 붙었군...
그루랑 얘기하다보면
당연시 생각되었던 것의 역전을
가끔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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