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monologue

논문 논란을 바라보며...

spring_river 2013. 3. 21. 13:34

 

2011년 7월의 한 포스팅에 이렇게 적혀 있다.

 

약간의 굴욕과 약간의 마음의 상처도 받고
그래서 원치 않은 방향으로 찢기다 보니
자랑할 만큼 만족스럽진 않지만
크게 의식하진 않았어도 아무튼 13년만의 묵은 짐을 내려놓게 되어 
그 사실만으로 그냥 홀가분한 정도
...

 

당시에는 블로그에서조차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아
위와 같이 뭉뚱그려 애매한 표현으로 간단히 썼었는데,
실은 그게 바로 '석사논문'이다.

IMF로 인해 회사 동료/선후배들이 사직, 휴직해야 하는 비참한 광경을 바라보며
나의 Value를 만들고 높여야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들어간지 13년만에
그리고 실질적으로 대학원 수료한지 9년만의 일이었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빴던 관계로 사실 오랫동안 논문을 포기한 상태였다.

지금 석사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내 지위가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학계로 진출하기 위한 일종의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던지라 그냥 포기했었다.

특수대학원 특성상 수료만 하고 졸업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이들을 좀더 독려해서 졸업하게 하고자 했던 학과장님의 끈질긴 추진을 계기로
아무튼 1년 정도의 준비 및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석사논문을 마쳤었다.

 

어제 한 스타강사의 논문 표절 논란을 접하며 마음이 좀 착잡했다.

물론 이 사건의 경우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건 표절은 아닌 듯하다.

논문의 소재인 개념을 정의하면서 그 정의의 1차 소스만을 밝히고
그 정의를 이미 사용한 2차 소스를 함께 밝히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는데
그건 기술상의 실수이지 표절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서두에 개념 정의를 인용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기 때문에
논문 전체 또는 부분부분을 그대로 가져다 붙이는 짜깁기와도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급작스럽게 폭발적인 유명세를 탄 데에 대한 
주변의 시기 또는 견제 성격으로 보이고,
유명세에 대해 그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약간의 억울할 수도 있는 케이스라 생각된다.

그와는 별도로, 내가 착잡했던 이유는

 

논문 (특히 특수대학원의 석사논문)을 어떻게 쓰라고 가르치는지 나도 알아버린 이상
단순히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하며 비난할 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어찌하여 뒤늦게 논문을 써 보기로 마음먹고
수료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문 쓰는 법에 대한 학교특강에 참석했었다.
자기가 쓰고자 하는 주제와 유사한 타 논문들을 30편 정도 추려서 읽어보고
그 중에 3~5편을 선별할 것,
선별한 그 논문들에서 자기 주제와 연관된 세부적인 이슈들을 만들고
설문 서베이 등을 통한 검증 작업을 한 뒤 그 이슈 가설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것.
강의 내용을 자세히 들을수록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쓰는 게 논문이야? 저게 무슨 '자기' 논문이야?

남의 논문들 요령있게 짜깁기하고 설문 붙여서 아무 가치도 없는 2차 저작물 만드는 거지, 저게...

맘만 먹으면 1~2주만에도 논문 뚝딱 쓸 수 있다는 항간의 얘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강의를 듣고나니 굳이 저렇게 해서 논문을 써야하나 싶어 갑자기 의지가 사라졌었다.

그런데 그 이후 학과장님과의 상담 과정에서 약간의 변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다른 이들이 기존에 해 놓은 논문 비교를 통한 작업보다는
학과와 관련된 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으로서 현업과 관련된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어주면
오히려 후배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책'을 쓴다고 생각하고 논문 작업을 해 보라는...

그렇게 하여 내가 원래 쓰고자 했던 주제를 펼칠 수 있게 되었고
그간 일해 왔던 업무 경험 중에서 서로 상반된 유형의 대표적인 두 가지 케이스 비교를 
기본 내용으로 하여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갖춰 논문을 준비했다.

그런데 첫 번째 논문심사 결과, 예상 외의 복병을 만나 논문이 통과되지 못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심사위원장이 반대를 한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논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다른 논문들을 언급하거나 다른 논문들을 비교 분석한 내용도 없고
기본 개념들을 정리한 부분도 없고(예를 들면, OO란 무엇인가) 등등...

당연히 없을 수 밖에... 

내가 쓴 내용은 이전에 전혀 다루어진 적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관례적인 논문 구성 양식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일해 오면서 축적해 온 노하우와 실제 고급 사례들을 공개한 것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내 논문은 참고문헌이 거의 없는, 내가 직접 쓴 글이었다.

논문 심사에 통과하지 못해 다음 학기 심사로 넘어가게 되면서
애초의 얘기와 너무 다른 상황에 열받기도 하고 수정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 확 그만둘까 했다가
그동안 써 놓은 것도 좀 아깝고 
또 가능한 한 논문 틀에 최소한은 맞춰서 그래도 끝내보자는 학과장님 설득에
다음 학기 심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결국은 논문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른 문헌을 인용하여 개념 정의도 넣고 (물론 인용 소스 밝히고~) 
내 논문과 상관은 없지만 몇 개의 논문들을 골라서 선행 연구 사례도 억지로 끼워맞춰 넣고......
내 고집을 조금은 누르고 그야말로 최소한의 틀만 맞춘 거라 2차 심사 때에도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암튼 그렇게 해서 최종 마감시간 직전에 겨우 통과가 되었다...

일부러 최소화했는데도 
전체 약 100페이지 중 그렇게 다른 사람의 내용이 인용된 추가구성 부분이 약 10페이지 정도.
그런데 논문 통과를 위해 2차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된 그 10%가 계속 찜찜하게 맘에 걸려 
왠지 완벽히 내 논문 같지 않은 기분이 괜히 들어 흡족스럽지 않았다. 

예정치 않았던 논문이라는 걸 쓰느라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고
그 틀에 맞추기 위해 할 수 없이 다른 여러 논문들을 억지로 훑어보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석사학위논문의 수준을 알게 되었고 (특수대학원 논문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래서 이런저런 석사논문의 논란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표절이라는 진단이 맞을 만큼의 비도덕적인 케이스까지 양해되는 건 결코 아니다.)

논문을 그런 방식으로 쓰라고 가르치고 있고
학위를 줄 만한 가치가 있나 싶을 논문을 별 여과없이 통과시켜주는 학교들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석사학위가 예전의 학사학위만큼 너무 흔해져 버린 지금,
석사논문도 예전의 학사논문만큼의 수준으로 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어찌 보면 제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제대로 열심히 연구해서 논문을 쓴 사람들은 억울할 일이다.

수요와 공급 모두의 높은 이해관계에 따라 석사학위가 남발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손쉬운 논문작성법이 교육되고 
논문지도과정 또한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한
논문 표절 논란은 아마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논문 논란에서 진정 자유로운 자가 아니라면
자기 그릇보다 더 많은 것을 탐하지도 말고
매스컴을 탈 일도 만들지 말고
공직에 나갈 생각도 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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