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2차세계대전 중 소련 군대를 탈영해 돼지우리에서 41년을 살았던 한 군인의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남아공의 작가 아돌 후가드가 희곡화한 이 작품은
암전될 때마다 10년 주기로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는 구성을 갖추고 있다.
1막_ 10년 후_ 전쟁이 끝나고 참전용사 기념식이 열리자 파벨은 자수하기 위한 연설을 준비하지만,
끝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아내를 내보내고 아내가 가지고 돌아온 건 전쟁영웅 훈장.
2막_ 또 10년 후_ 탈영의 계기가 되기도 했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빨간 꽃자수 슬리퍼는
이제 파리를 잡는 도구가 되어 있고 파리를 잡다가 나비를 발견한 파벨,
그 나비를 삼켜버린 돼지를 죽이는 파벨.
3막_ 또 10년 후_ 30년만의 첫 외출, 여장을 하고 아내와 밤 산책에 나선 파벨,
더 멀리 나가려 고집하다가 아내가 함께 하지 않자 두려움에 다시 돌아온 후
스스로 돼지가 되는 파벨, 그리고 아내의 매 타작
4막_ 또 10년 후_ 분열된 자아의 목소리에 돼지들을 밖으로 모두 몰아내버리는 파벨, 해방...
성당이 된 돼지우리, 그리고
40년만에 드디어 햇빛 가득한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
공연을 보면서 어떻게 마무리가 될까 궁금했는데, 결말의 전개는 확실히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연극의 묵직한 힘을 보여준 작품!
# 이 공연은 2인극임에도 불구하고 대극장 무대의 2시간을 오롯이 꽉 채운
박완규, 고수희 두 배우의 압도적인 힘이 굉장히 컸다.
박완규 배우는 이제 이 배우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고,
고수희 배우는 (아마도 배우 교체 때문에 중간에 투입되어 연습기간이 길지 않았을 텐데도)
파벨에 대응되는 '현실'의 그 캐릭터 표현과 극의 무게중심을 훌륭히 잘 잡아주었다.
손진책 연출 또한 역시 거장다운 관록을 여실히 보여 주었고
무대와 조명도 인상적이었다.
# 공연을 보고나서 궁금했던 것 하나는,
돼지우리를 뜻하는 pigsty라는 하나의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제가 Pigsty가 아닌 'A Place with the Pigs'인 이유가 뭘까 하는...
물리적인 뜻 그대로보다는, 이 공간의 더 포괄적인 상징 때문이 아닐는지.
A Place with the Pigs은 돼지우리와 같은 고정형 의미가 아닌,
A Place without the Pigs가 될 가능성도 있는 공간이기에...
나의 돼지우리는 무엇인가.
나를 가두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은 무엇인가.
내가 해방시켜야 할, 그럼으로써 해방되어야 할 돼지우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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