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monologue

그루밖에 없다...

spring_river 2004. 4. 14. 14:28


어제 무지 화가 나고 열받고 짜증나고
어이없고 모욕적인
일이 있었다.
그나마 일찍 들어와서(9시반경) 밥을 먹고 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밥을 먹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루나 시어머님이 볼까봐 밥 먹다말고 화장실에 들어가

좀 울다가 진정시키고 다시 나와서 마저 밥을 먹었다.
먹은 설겆이를 하고나서 생각해 보니

도저히 이 상태로서는
그루랑 웃는 얼굴로 놀아줄 수가 없을 것 같아

어머님한테는 머리가 아파서 먼저 집에 간다고 얘기하고
'
그루야, 엄마 간다' 그러구 집에 갔다.

집에 가면서 좀 마음이 찔리긴 했다
.
맨날 10시반, 11시에 오다가 간만에 일찍 와서는

그루랑 놀아 주지도 못하고 가는 게...
집에 와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시댁에서 전화가 왔다
.
전화기 너머로 그루가 악을 쓰며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님 말씀이 그루가 갑자기 엄마한테 간다고
아파트 데려다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라는 거다.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
지금 내가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 나서는데

길 중간에 이미 어머님이 업고 나오셨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엄마가 안 놀아주고 가서인지

울고불고 땡깡부리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그루를 데리고 아파트에 와서 책을 읽어 주며 놀았다
.
근데 요게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냥 책 읽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하는 말이
"
그루, 할머니는 쪼끔 좋아.
 
엄마가 제일 좋아
!"
......
애 눈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
엄마가 오늘 무지 슬픈 날이라는 걸 안 거다
...

생각해 보니 갑자기 힘이 좀 나는 것도 같았다
.
든든한 내 편이 한 명 있다는 거
...
그래서 내가 마치 두 명이 한 몸인 것 같은 거
...
그래서 누구랑 싸워도 내가 2인분이니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
그루가 앞으로 더 커서 내게서 조금씩 벗어나려 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거...
(
그 때쯤 되면 그루 아빠랑 나랑 한 편이 되어 있겠지
.
 
살면서 느끼는 게, 늙으면 부부밖에 없는 것 같다
...)
다시 한번 느꼈다, 애는 꼭 있어야 한다는 것
...
그루밖에 없다,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