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밖에 없다...
어제 무지 화가 나고 열받고 짜증나고
어이없고 모욕적인 일이 있었다.
그나마 일찍 들어와서(9시반경) 밥을 먹고 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밥을 먹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그루나 시어머님이 볼까봐 밥 먹다말고 화장실에 들어가
좀 울다가 진정시키고 다시 나와서 마저 밥을 먹었다.
먹은 설겆이를 하고나서 생각해 보니
도저히 이 상태로서는
그루랑 웃는 얼굴로 놀아줄 수가 없을 것 같아
어머님한테는 머리가 아파서 먼저 집에 간다고 얘기하고
'그루야, 엄마 간다' 그러구 집에 갔다.
집에 가면서 좀 마음이 찔리긴 했다.
맨날 10시반, 11시에 오다가 간만에 일찍 와서는
그루랑 놀아 주지도 못하고 가는 게...
집에 와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시댁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그루가 악을 쓰며 우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님 말씀이 그루가 갑자기 엄마한테 간다고
아파트 데려다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라는 거다.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지금 내가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 나서는데
길 중간에 이미 어머님이 업고 나오셨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엄마가 안 놀아주고 가서인지
울고불고 땡깡부리고 난리가 아니었단다.
그루를 데리고 아파트에 와서 책을 읽어 주며 놀았다.
근데 요게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고 그냥 책 읽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하는 말이
"그루, 할머니는 쪼끔 좋아.
엄마가 제일 좋아!"
......
애 눈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엄마가 오늘 무지 슬픈 날이라는 걸 안 거다...
생각해 보니 갑자기 힘이 좀 나는 것도 같았다.
든든한 내 편이 한 명 있다는 거...
그래서 내가 마치 두 명이 한 몸인 것 같은 거...
그래서 누구랑 싸워도 내가 2인분이니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그루가 앞으로 더 커서 내게서 조금씩 벗어나려 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거...
(그 때쯤 되면 그루 아빠랑 나랑 한 편이 되어 있겠지.
살면서 느끼는 게, 늙으면 부부밖에 없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느꼈다, 애는 꼭 있어야 한다는 것...
그루밖에 없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