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단상...
어제 퇴근길에 회사에서 굴러다니는 무비위크를 들고 나갔는데
지하철 안에서 펴 보니 공교롭게도 지난 연말의 책자다.
그냥 휙휙 넘기면서 보다가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종로 코아아트홀 폐관'
작년말에 코아아트홀이 폐관되었나 보다.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다.
갑자기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짜안하다.
대학 시절 그리고 사회 초년 시절 자주 찾던 영화관이었다.
다른 영화관에서는 개봉하지 않는 좋은 예술영화들을
바로 그 곳에서 만났었다.
그러구보니 역시 작년 하반기 언젠가에
대학로의 동숭씨네마텍이 문을 닫고
공연장으로인가 아무튼 용도변경을 할 거라고
어느 지면에서 본 것 같다.
동숭씨네마텍 역시 열심히 갔던 영화관 중의 하나였다.
한 2년 정도는 회비도 내고 영화를 볼 정도였으니...
지하에 자리잡고 있었던 조그마한 카페도 기억난다.
좋은 영화를 그곳에서 많이 만났었는데 그 곳도 문을 닫았구나...
하긴 나부터도 코아아트홀이나 동숭씨네마텍을 간 지가
무지 오래 되었으니 뭐... 할 말은 없지...
대학교 앞 단골집이 없어진 걸 알았을 때와는
또다른 종류의 느낌으로 아쉽다.
내 지난 기억의 한 페이지가 잘려나간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영화 관람이라는 게 미혼남녀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애를 낳기 이전의 남녀의 최대의 여가거리다.
나 역시 이전에는 씨네21 창간 때부터 3~4년인가를
정기구독하며 열심히 읽었었고
(일주일에 잡지 한 권 읽을 만큼의 시간도 없어
채 손도 못 댄 지난호가 서서히 쌓이기 시작하면서
아쉽지만 과감히 정기구독을 끊었다.
그 때가 아마 조선희 편집장이 그만 둘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였다.)
일주일에 한 편씩은 영화를 볼 만큼 영화애호가라면 애호가였다.
나의 영화 관람은 정확히 그루를 낳은 후부터 끊겼다.
대부분의 아기 아빠엄마가 그러할 것이다.
애가 있는 집의 주말은
일주일의 피로를 씻고 여가를 즐기는 그러한 주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직장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평일에 애한테 못다한 것을 주말에 하기 위해
주말은 무조건 '애와 함께 하는 날'이다.
주말에 오붓이 영화를 보러 가는 건 꿈도 못 꿀 일이 된 것이다.
그렇게 꽤 오랜 동안을 영화와 멀리 살다가
언젠가 마음이 動하기 시작하여
평일 저녁 일찍 퇴근하는 날에
계획하지 않았던, 불현듯 혼자 영화보러 다니게 되었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樂이었다.
그렇게 해서 평균 한두달에 1~2편씩 보고 있는 것 같다.
얘기가 좀 샜지만,
예술영화 전용관이 폐관에 이르게 된 건
아마 멀티플렉스 극장의 공세가 주요 원인일 것이다.
예술영화 인구가 많지 않은 건 옛날보다 조금 늘었으면 늘었지
그때나 지금이나 뭐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내가 자주 가는 영화관 역시 멀티플렉스 극장이다.
다른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집에서 가까워서 그곳에 간다.
사람들이 보통 멀티플렉스 극장을 선호하는 이유가
선택의 폭이 넓어서 아닌가?
하지만 이 이유가 나에게는 별로 해당이 되지 않는다.
나는 보통 그냥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어떠한 '그' 영화를 보러 가니까...
어떠한 영화를 보고 싶어서 극장을 찾는 것이고
그 영화가 매진이면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냥 극장을 나온다. 내가 보고자 했던 걸 볼 수 없기에...
(멀티플렉스 극장 측에서는 나 같은 관객은 Target이 아니겠지...)
내게 영화는 취사선택 가능한 여가거리가 아니라
꼭 그것을 보고 싶은 그러한 대상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코아아트홀이나 동숭씨네마텍은
바로 내가 보고 싶어하는 그런 영화를
언제나 많이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전혀 화려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 곳 특유의 따뜻함이 배어 있었고
늘 새롭고 훌륭한 제안으로 나를 다시 부르곤 했던 곳이었다.
그 곳이 사라졌다...
종로나 대학로는 내가 자주 가던 거리가 아니어서 낯설지만
그 곳만큼은 그 거리에서 가장 살갑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곳이 이젠... 사라졌다...
극장이나 공연장도 그렇고 카페나 술집도 그렇고
크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별로 친숙감을 못 느끼는 타입이라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작은 공간들에 대해
슬프고 그리고 쓸쓸하다...